손이 세 번 가면 안 쓰게 된다 — 사놓고 밀려난 살림템들

캡슐 한 개 690원, 편의점 아메리카노 1500원. 계산은 맞았다. 그래서 캡슐머신을 샀고, 두 달 뒤엔 다시 편의점 커피를 들고 나왔다.

기계가 고장 난 것도, 커피가 맛없던 것도 아니었다. 물 채우고 캡슐 넣고, 다 뽑으면 캡슐 빼서 버리고 트레이 비우고. 재보니 3분쯤이었다. 아침엔 그 3분이 없었다. 지금은 주말에만 쓴다.

밀려난 건 성능이 아니라 동작 수 때문이었다

비슷한 게 하나 더 있었다. 전기요금 아끼려고 산 절전 멀티탭 1만 9천 원. 넉 달 쓰고 고지서를 비교해보니 한 달에 700원쯤 줄었더라. 그것도 스위치를 꼬박 껐을 때 얘기고, 귀찮아서 그냥 켜두고 잔 날이 더 많았다.

둘 다 계산은 맞았는데 내 손이 안 따라갔다. 그때부터 절약 물건을 살 때 값보다 먼저 보는 게 생겼다. 이게 내가 원래 하던 행동에 그냥 붙는 건지. 안 붙으면 서랍으로 간다.

접히고 분리되는 건 대체로 오래 못 갔다

3만 원 주고 산 접이식 채반은 반년 만에 버렸다. 접히는 부분 실리콘 틈에 물때가 끼는데 칫솔로 긁어도 안 빠졌다. 자리를 덜 먹는다고 산 건데, 어차피 싱크대 위에 늘 나와 있었으니 접을 일도 없었다. 지금 쓰는 건 4천 원짜리 스테인리스 채반이고 2년째 멀쩡하다.

2만 원짜리 압축팩 6장도 비슷했다. 한 달 만에 4장이 다시 빵빵해져서 밸브가 샌 줄 알고 한참 노려봤는데, 지퍼 홈에 낀 먼지가 문제였다. 남은 2장은 지퍼가 두 줄짜리인데 얘들은 아직 눌린 채로 있다. 다음엔 몇 장 들었나 말고 지퍼 줄 수를 볼 생각이다. 계절 한 번은 더 넘겨봐야 알 것 같지만.

값과 수명을 같이 적어봤다

물건 산 값 지금 상태
캡슐머신 주말에만
접이식 채반 3만 원 반년 만에 버림
스테인리스 채반 4천 원 2년째 사용
압축팩 6장 2만 원 두 줄 지퍼 2장만 생존
절전 멀티탭 1만 9천 원 월 700원 절감, 넉 달째 본전 전
물빠짐 받침 3천 원 매일

적어놓고 보니 비싼 쪽이 하나같이 밑에 있었다.

제일 잘 산 건 3천 원짜리였다

자취 3년 차에 제일 잘 산 물건은 싱크대 옆에 두는 물빠짐 받침이었다. 설거지 끝낸 그릇을 올려두면 물이 고이지 않아서 행주 빠는 횟수가 확 줄었다. 하던 동작 그대로인데 결과만 바뀌는 물건.

주방 서랍 정리할 때도 같은 게 보였다. 안 쓰는 실리콘 도구 4개, 뚜껑 없어진 밀폐용기 3개를 버렸다. 도구를 늘릴 때는 별로 안 편해졌는데, 자주 쓰는 걸 손 닿는 칸으로 옮기니까 그때부터 설거지가 빨라졌다.

다음에 뭘 살 때

요즘 물건 앞에서 하는 질문은 세 개다. 쓰고 나서 손이 몇 번 더 가는가. 틈이나 이음새가 있는가. 내가 원래 하던 동작에 그냥 얹히는가.

이 기준이 늘 맞는지는 모르겠다. 캡슐머신도 주말엔 잘 쓰고 있으니 완전히 실패라고 하기도 애매하다. 다만 3만 원짜리를 반년 만에 버리고 4천 원짜리를 2년 쓰는 걸 한 번 겪고 나면, 가격표보다 먼저 보게 되는 게 생기긴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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